안녕, 고독한미식가야. 3교대 간호사 생활에 찌들어가는 영혼을 구제하고자 정말 큰맘 먹고 떠났던 여름휴가, 그 5박 6일간의 발리 이야기를 드디어 풀어볼까 해. 매일 병원 기계 소리와 긴급 호출 속에서 살다가 ‘신들의 섬’이라 불리는 곳으로 떠난다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설렘이었지. 일상 탈출이 절실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 발리는 완벽한 선택이었어.
원래 여행 계획 짤 때 엄청 꼼꼼한 편이거든. 병원에서 환자 차트 보듯 항공권부터 숙소, 동선까지 몇 주 동안 들여다봤어. 이번 여행의 목표는 딱 두 가지였어. 인스타에서만 보던 그 멋진 풍경들을 내 눈으로 직접 담는 것,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푹 쉬면서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는 것.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켜야만 하는, 나름의 미션이 있었던 여행이야.
첫날은 늦은 오후에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했어. 비행기 문이 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그 특유의 덥고 습한 공기, 아 이게 동남아구나 싶더라. 공항은 생각보다 복잡했는데, 미리 예약해 둔 픽업 기사님 덕분에 헤매지 않고 바로 숙소로 향할 수 있었지. 이런 건 무조건 미리 예약해야 마음이 편해. 특히 밤늦게 도착한다면 더더욱. 첫 숙소는 스미냑 쪽에 잡았는데, 늦은 시간에도 활기가 넘치는 동네였어. 짐만 대충 풀어놓고 바로 근처 와룽(Warung, 현지 식당)으로 달려가서 첫 미고랭과 빈땅 맥주를 마셨는데, 와… 그 순간 모든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어. “이 맛에 여행 오는구나” 싶었지.
다음 날은 이번 여행의 핵심 중 하나인 발리 동부 투어를 하는 날이었어. 이건 무조건 프라이빗 투어 차량을 하루 대절하는 걸 추천해. 각 스팟 간 거리가 상당해서 대중교통으로는 절대 하루에 다 볼 수 없거든. 새벽같이 일어나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천국의 문’으로 유명한 렘푸양 사원. 다들 인스타에서 한 번쯤은 봤을 그 사진 있잖아. 아궁 화산을 배경으로 사원 문 사이에 서 있는 사진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그 사진은 사원 직원이 거울을 카메라 렌즈 밑에 대고 찍어주는 ‘트릭’이라는 걸 알고 갔어. 근데 막상 내 차례가 돼서 그 문 앞에 서니, 거울 트릭이고 뭐고 그냥 그 분위기 자체에 압도당하더라. 저 멀리 보이는 아궁 산의 실루엣과 하늘이 정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거든. 다만 대기 시간이 정말 길어. 난 새벽에 출발해서 그나마 1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조금만 늦어도 3~4시간은 기본이라고 하더라고. 역시 뭐든 부지런해야 해.
렘푸양 사원에서 인생샷을 건지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물의 궁전’ 띠르따 강가였어. 연못 위를 징검다리처럼 건널 수 있게 만들어 놨는데, 바로 발밑으로 팔뚝만 한 잉어들이 수백 마리씩 헤엄쳐 다녀. 관광객들이 주는 물고기 밥을 먹으려고 입을 뻐끔거리면서 몰려드는데, 그 모습이 좀 징그러우면서도 장관이더라. 여기서도 사진 찍으면 정말 예쁘게 나와. 또 다른 물의 궁전인 따만 우중도 들렀는데, 띠르따 강가보다는 사람이 적어서 훨씬 한적하고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았어. 유럽식 건축 양식이 섞여 있어서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났지.
동부 투어로 하루 종일 걷고 땀 흘렸더니 온몸이 쑤시더라.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바로 마사지지. 저녁에는 미리 예약해둔 스파에서 발리 전통 마사지를 받았는데, 이건 정말 신의 한 수였어.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압으로 뭉친 근육을 하나하나 풀어주는데, 특히 매일 환자들 돌보느라 뭉쳐 있던 내 어깨와 등이 풀리는 느낌이 생생했어. “이건 치료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 역시 간호사라 그런지 이런 근육 이완에 진심인 편이야.
셋째 날의 테마는 우붓의 자연이었어. 발리의 심장이라고도 불리는 우붓은 예술가들의 마을답게 고즈넉하면서도 생기가 넘치는 곳이었지. 먼저 뜨구눙안 폭포로 향했는데,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엄청난 물소리에 가슴이 웅장해지더라. 폭포 아래서 물보라를 맞고 있으니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이 다 씻겨나가는 기분이었어. 습하긴 엄청 습한데, 그 시원함과 웅장함이 모든 걸 잊게 만들어.
그리고는 점심을 먹을 겸 낀따마니 고원으로 향했어. 이건 정말 이번 여행에서 꼭 추천하고 싶은 코스야. 낀따마니 고원지대에 있는 레스토랑에 앉아 활화산인 바투르 산과 그 옆에 펼쳐진 거대한 칼데라 호수를 보면서 식사를 하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거든. 음식 맛은 솔직히 말해서 엄청나다기보다는 ‘뷰 값’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해. 뷔페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은데, 종류는 다양하지만 맛은 평범한 편. 그래도 그 압도적인 풍경 하나만으로도 갈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

넷째 날은 섬 속의 섬, 누사 페니다로 떠났어. 쾌속선을 타고 40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곳인데, 발리 본섬과는 또 다른 원시적인 자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야. 페니다 섬의 도로는 정말… 상상 이상으로 험하니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해. 울퉁불퉁한 길을 차 타고 달리다 보면 엉덩이가 공중 부양하는 경험을 하게 될 거야.
그렇게 고생해서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페니다의 상징, 클링킹 비치. 공룡 혹은 티라노사우르스를 닮은 절벽으로 유명한 곳이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그 풍경은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야.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백사장, 그리고 기괴한 모양의 절벽이 어우러져서 비현실적인 그림을 만들어내. 절벽 아래 해변까지 내려가는 길이 있긴 한데, 경사가 엄청나고 길이 험해서 포기했어. 내 나이와 체력을 생각해서 무리하지 않기로 했지. 병원에서 안전을 외치던 직업병이 여기서도 나오더라.
클링킹 비치의 감동을 뒤로하고 브로큰 비치와 엔젤스 빌라봉을 둘러본 뒤, 오후에는 스노클링을 하러 갔어. 바다에 뛰어들어 얼굴을 물에 담그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지. 형형색색의 산호초 사이를 헤엄쳐 다니는 수많은 열대어들을 보고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삐- 삐- 울리던 병원의 기계음 대신 고요한 물소리와 내 숨소리만 들리니까, 이게 진짜 휴식이구나 싶었어.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까지 정화되는 느낌. 간호사 가운을 벗어 던지고 자연과 하나가 된 기분이었지.
어느새 여행 막바지인 다섯째 날. 이 날은 남쪽으로 내려와 꾸따 시내를 구경하고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저녁 식사를 계획했어. 꾸따는 확실히 스미냑이나 우붓과는 다른, 젊고 활기찬 분위기였어.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고, 길거리 상점과 맛집들도 즐비했지. 기념품도 사고 잠시 여유를 즐기다가 해 질 무렵,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짐바란 해변으로 향했어.
짐바란 씨푸드는 해변에 테이블을 쫙 깔아놓고, 직접 고른 신선한 해산물을 즉석에서 그릴에 구워주는 곳이야. 수많은 가게들이 있는데, 발품을 좀 팔아서 흥정하는 재미도 있어. 나는 새우랑 생선, 조개, 오징어를 골랐는데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구워주는 그 냄새가 정말 참을 수 없었지.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먹는 씨푸드 플래터와 시원한 빈땅 맥주 한 잔. 이 순간을 위해 내가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일했나 싶더라. ‘고독한미식가’라는 내 닉네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완벽한 저녁 식사였어.

그렇게 마지막 밤이 깊어갔고, 다음 날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5박 6일의 여정을 되돌아봤어. 렘푸양의 신비로운 아침부터 짐바란의 낭만적인 저녁까지, 모든 순간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더라. 다시 지긋지긋한 3교대 현실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 여행의 기억이 앞으로 몇 달간 나를 버티게 해 줄 든든한 에너지원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 발리는 나에게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지친 일상에 찍는 쉼표이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 고마운 곳으로 기억될 거야. 혹시 지금 일상에 지쳐 탈출을 꿈꾸고 있다면, 주저 말고 발리로 떠나보라고 말해주고 싶네. 분명 후회하지 않을 테니.
💡 여행 팁 정리
- 프라이빗 차량투어 활용: 발리는 관광지 간 거리가 멀고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하루 정도는 기사님이 포함된 차량을 대절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야. 특히 동부 투어나 우붓 투어 시에는 필수.
- 렘푸양 사원은 무조건 새벽 출발: ‘천국의 문’ 인생샷을 원한다면 무조건 남들보다 일찍 움직여야 해. 늦게 가면 대기 시간만 3~4시간 훌쩍 넘어가서 하루 일정 전체가 꼬일 수 있어.
- 낀따마니 뷰 레스토랑: 낀따마니 고원에 있는 레스토랑들은 음식 맛보다는 바투르 화산 뷰를 즐기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큰 기대 없이 풍경을 즐기는 데 의의를 두자.
- 누사 페니다 섬 투어: 섬 내부 도로 사정이 매우 안 좋으니 멀미약을 챙기는 걸 추천해. 또한 클링킹 비치 하이킹 등은 체력과 안전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좋아.
- 짐바란 씨푸드 흥정: 해변에 즐비한 식당들마다 가격이 조금씩 달라. 몇 군데 둘러보면서 가격을 비교하고 가벼운 흥정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 현지 유심 및 어플 활용: 공항이나 시내에서 저렴한 현지 유심을 구매하면 여행 내내 편해. 차량 호출 어플인 ‘그랩(Grab)’이나 ‘고젝(Gojek)’은 꼭 설치해가자.
- 소액권 현금 준비: 길거리 음식이나 작은 상점, 사원 입장료, 팁 등은 카드가 안되는 경우가 많으니 인도네시아 루피아(IDR) 소액권을 어느 정도 환전해서 다니는 게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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